[Star Chef] 레스쁘아(L’espoir) 임기학 셰프
<이 기사는 톱클래스 3월호에 게재된 기사입니다>
‘미슐랭 가이드’ 별 따기는 모든 레스토랑의 꿈이다. 별 하나만 받아도 ‘미슐랭 별이 떴다’고 술렁인다. 뉴욕에는 미슐랭이 최고로 꼽는, 별 세 개짜리 레스토랑이 네 군데 있다. 그중 ‘다니엘’은 명실공히 ‘최고의 프렌치 레스토랑’으로 꼽힌다. 국내에도 다니엘 출신 요리사가 있다. 2008년 5월, 삼성동에 비스트로 콘셉트의 레스토랑 ‘레스쁘아’를 오픈한 임기학 셰프. ‘레스쁘아’는 최근 미식가들 사이에서 화제다.
청담역 사거리 뒷골목, ‘편안한 집 같은 작은 레스토랑’이라는 콘셉트의 비스트로 레스토랑을 표방한 ‘레스쁘아’는 철저히 정성과 실력으로 승부하는 프렌치 레스토랑이다. 2인용 테이블 네 개, 4인용 테이블 두 개가 전부인 소박한 공간에 셰프만 네 명. 만석이라고 해도 셰프 한 명당 맞이하는 손님이 네 명을 넘지 않는다. 오픈 키친에 다닥다닥 붙어서 쉴 새 없이 손을 놀리는 셰프들에게서 정성이 느껴진다.
이 레스토랑이 오픈한 건 2008년 5월. ‘다니엘 출신의 젊고 스타일리시한 셰프의 레스토랑’으로 이름 나면서 처음부터 사람이 몰렸다. 소문을 듣고 호기심에 와본 사람은 곧장 단골이 됐고, 단골들이 다시 소문을 내면서 손님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는다. 소문난 맛집을 찾아다니는 젊은 여성도 많이 찾지만, 청담동 주택가의 중장년층 단골이 특히 많다고 한다.

“진짜 비스트로를 만들고 싶었어요. 편안한 인테리어에 편안한 서비스, 수준 높은 음식 삼박자를 갖춘 제대로 된 비스트로 말이에요. 와보신 분들은 인테리어가 독특하다고들 하시는데, 아직 우리나라에는 흔하지 않은 콘셉트라서 그렇게 생각하는 것 같아요. 전통을 거스르지 않는 인테리어와 서비스, 요리를 재현하고 싶었는데, 그렇게 보이나요?”
레스쁘아의 인테리어와 서비스는 비스트로 레스토랑에 부합하지만, 요리는 그렇지 않다. 제대로 갖춘 테이블 세팅, 정성스런 플레이팅, 수준급 요리 등 비스트로보다 파인 다이닝에 가깝다. 그가 거쳐온 레스토랑은 다이엘 외에도 카페 그레이(뉴욕의 타임워너센터에 있던 파인 다이닝 레스토랑), 한국의 그랜드 하얏트호텔 ‘파리스 그릴’, 파크 하얏트호텔 ‘코너 스톤’ 등 정통 프렌치 레스토랑들이다. 그는 “아무리 차분한 음식을 만들고, 투박한 플레이팅을 하려 해도 파인 다이닝의 색채를 떨쳐내기 힘들다”고 말한다. 이 엇박자가 손님에게는 오히려 반가운 측면도 있다. 수준급 요리를 편안한 분위기에서 비교적 저렴한 가격에 즐길 수 있기 때문.
그가 요리사가 된 배경이 이채롭다. 그의 집은 3대째 요식업을 하고 있다. 그의 할아버지는 일본에 야키니쿠(일본식 직화구이)를 정착시킨 임광식 옹(작고)이다. 1948년 임광식 옹이 오픈한 야키니쿠 전문점 ‘식도원(쇼쿠도엔)’은 오사카・고베 등지에 15개의 체인점을 두고 있다. 어려서부터 할아버지를 선망한 그는 막연히 ‘할아버지처럼 음식과 관련된 일을 하겠다’고 마음먹었다. 하지만 한국에서 일식당을 운영하면서 고생한 그의 어머니는 자식이 요식업에 종사하는 것을 원치않았고, 부모의 반대로 잠시 꿈을 접은 그는 대학에서 성악을 전공했다. 성악을 전공하면서도 요리에 대한 열정은 점점 커져갔고, 졸업하자마자 미국으로 날아가 요리학교를 다녔다. 미국에서 요리 강사로 활동하던 그의 이모가 많은 조언을 해주었다.
세계 10대 요리사 다이엘 뵐루가 롤 모델

셰프를 꿈꾸던 그에게 롤 모델이 생겼다. 세계 10대 요리사이자 《젊은 요리사에게 보내는 14가지 조언》의 저자인 다니엘 뵐루. 다니엘 뵐루가 운영하는 뉴욕 최고의 레스토랑 ‘다니엘’은 그에게 ‘간절한 꿈’이었다. 다니엘 뵐루가 쓴 책을 모두 찾아 읽고, 틈나는 대로 다니엘에 가서 요리를 맛보았다. 인턴십을 위해 다니엘의 문을 수시로 두드리던 그는 마침내 다니엘에 들어간다. 열정으로 똘똘 뭉친 그의 이력서를 보고 와보라는 연락을 받은 것. 그때부터 다니엘에서의 ‘트레일’ 생활이 시작됐다. 주방 보조 역할인 트레일은 특별한 보직 없이 닥치는 대로 알아서 일해야 한다.
“집에서 다니엘까지 세 시간 거리를 다녔지요. 다니엘의 트레일 과정은 혹독하기로 유명해요. 일도 많고, 하는 일 자체도 거칠고, 조금만 잘못하면 고래고래 호통 치죠. 하루 16시간씩 일했는데, 잠시도 쉬지 못해요. 밥도 서서 먹어야 했어요. 아무 말 없으면 계속 다녀도 되는데, 안 나와도 아무도 신경 안 쓰는 분위기예요. 답답해서 미칠 것 같았죠. 냉장고 안에 들어가 소리를 지른 적도 있어요.”
트레일 과정을 성공적으로 해낸 그는 인턴으로 받아들여졌다. 그리고 다시 3개월 후, 다니엘의 정식 가족이 됐다.
“어느 날 일이 끝났는데 담당 셰프가 저를 부르더니 이 식당에서 가장 먹고 싶은 요리를 고르래요. 72시간 동안 브레이징(오븐에서 뭉근히 익힘)해야 하는 어린 돼지 족 요리를 골랐어요. 요리를 해주면서 ‘이제 당신은 우리의 가족이 됐다’고 했죠. 한입 베어 먹었는데, 와~ 세상에서 처음 느껴본 맛이었어요. 돼지에 어우러진 진한 트러플(송로버섯) 향이 환상적이었어요. 그 맛을 평생 잊지 못할 거예요.”
다니엘에서 그가 고안해낸 요리가 정식메뉴에 오른 적도 있다. 동양 손님이 많이 찾는 설날 연휴, 각종 견과류와 쌀, 잡곡을 갈아 넣고 랍스터 살과 함께 끓인 죽과 수프의 중간쯤 되는 식감의 음식을 제안했는데, 이 음식이 채택돼 코스요리의 맨 앞에 오른 것. 이후 그는 뉴욕의 타임워너센터에 입점한 ‘카페 그레이’에서 경험을 쌓아갔다. 오너 셰프를 꿈꾸던 그는 마침 비자가 만료되어 미국 최고 레스토랑에서의 경험을 뒤로하고 귀국했다. 다니엘에서 그는 요리사로서의 체력과 열정, 직급 고하를 막론하고 새로운 요리에 대해 열린 마음을 배웠다고 한다. 훌륭한 셰프에게 가장 중요한 조건은 뭘까. 그는 한참 생각하더니 입을 열었다.
“정직 같아요. 셰프 스스로 요리의 모든 과정에 떳떳하고 당당할 수 있어야 해요. ‘이건 아닌 것 같은데’ 하면서 그대로 하는 건 정직하지 않은 거죠. 재료를 보관할 때도 ‘이렇게 하면 안 되는데’ 하면서 그렇게 하고, 맛을 보고 ‘생각했던 맛이 아닌데’ 하면서도 손님에게 내는 건 훌륭한 셰프가 아니죠. 단계마다 스스로를 냉철하게 감시합니다. ‘나는 과연 정직한가’ 하고요.”
청담역 사거리 뒷골목, ‘편안한 집 같은 작은 레스토랑’이라는 콘셉트의 비스트로 레스토랑을 표방한 ‘레스쁘아’는 철저히 정성과 실력으로 승부하는 프렌치 레스토랑이다. 2인용 테이블 네 개, 4인용 테이블 두 개가 전부인 소박한 공간에 셰프만 네 명. 만석이라고 해도 셰프 한 명당 맞이하는 손님이 네 명을 넘지 않는다. 오픈 키친에 다닥다닥 붙어서 쉴 새 없이 손을 놀리는 셰프들에게서 정성이 느껴진다.
이 레스토랑이 오픈한 건 2008년 5월. ‘다니엘 출신의 젊고 스타일리시한 셰프의 레스토랑’으로 이름 나면서 처음부터 사람이 몰렸다. 소문을 듣고 호기심에 와본 사람은 곧장 단골이 됐고, 단골들이 다시 소문을 내면서 손님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는다. 소문난 맛집을 찾아다니는 젊은 여성도 많이 찾지만, 청담동 주택가의 중장년층 단골이 특히 많다고 한다.

“진짜 비스트로를 만들고 싶었어요. 편안한 인테리어에 편안한 서비스, 수준 높은 음식 삼박자를 갖춘 제대로 된 비스트로 말이에요. 와보신 분들은 인테리어가 독특하다고들 하시는데, 아직 우리나라에는 흔하지 않은 콘셉트라서 그렇게 생각하는 것 같아요. 전통을 거스르지 않는 인테리어와 서비스, 요리를 재현하고 싶었는데, 그렇게 보이나요?”
레스쁘아의 인테리어와 서비스는 비스트로 레스토랑에 부합하지만, 요리는 그렇지 않다. 제대로 갖춘 테이블 세팅, 정성스런 플레이팅, 수준급 요리 등 비스트로보다 파인 다이닝에 가깝다. 그가 거쳐온 레스토랑은 다이엘 외에도 카페 그레이(뉴욕의 타임워너센터에 있던 파인 다이닝 레스토랑), 한국의 그랜드 하얏트호텔 ‘파리스 그릴’, 파크 하얏트호텔 ‘코너 스톤’ 등 정통 프렌치 레스토랑들이다. 그는 “아무리 차분한 음식을 만들고, 투박한 플레이팅을 하려 해도 파인 다이닝의 색채를 떨쳐내기 힘들다”고 말한다. 이 엇박자가 손님에게는 오히려 반가운 측면도 있다. 수준급 요리를 편안한 분위기에서 비교적 저렴한 가격에 즐길 수 있기 때문.
그가 요리사가 된 배경이 이채롭다. 그의 집은 3대째 요식업을 하고 있다. 그의 할아버지는 일본에 야키니쿠(일본식 직화구이)를 정착시킨 임광식 옹(작고)이다. 1948년 임광식 옹이 오픈한 야키니쿠 전문점 ‘식도원(쇼쿠도엔)’은 오사카・고베 등지에 15개의 체인점을 두고 있다. 어려서부터 할아버지를 선망한 그는 막연히 ‘할아버지처럼 음식과 관련된 일을 하겠다’고 마음먹었다. 하지만 한국에서 일식당을 운영하면서 고생한 그의 어머니는 자식이 요식업에 종사하는 것을 원치않았고, 부모의 반대로 잠시 꿈을 접은 그는 대학에서 성악을 전공했다. 성악을 전공하면서도 요리에 대한 열정은 점점 커져갔고, 졸업하자마자 미국으로 날아가 요리학교를 다녔다. 미국에서 요리 강사로 활동하던 그의 이모가 많은 조언을 해주었다.


셰프를 꿈꾸던 그에게 롤 모델이 생겼다. 세계 10대 요리사이자 《젊은 요리사에게 보내는 14가지 조언》의 저자인 다니엘 뵐루. 다니엘 뵐루가 운영하는 뉴욕 최고의 레스토랑 ‘다니엘’은 그에게 ‘간절한 꿈’이었다. 다니엘 뵐루가 쓴 책을 모두 찾아 읽고, 틈나는 대로 다니엘에 가서 요리를 맛보았다. 인턴십을 위해 다니엘의 문을 수시로 두드리던 그는 마침내 다니엘에 들어간다. 열정으로 똘똘 뭉친 그의 이력서를 보고 와보라는 연락을 받은 것. 그때부터 다니엘에서의 ‘트레일’ 생활이 시작됐다. 주방 보조 역할인 트레일은 특별한 보직 없이 닥치는 대로 알아서 일해야 한다.
“집에서 다니엘까지 세 시간 거리를 다녔지요. 다니엘의 트레일 과정은 혹독하기로 유명해요. 일도 많고, 하는 일 자체도 거칠고, 조금만 잘못하면 고래고래 호통 치죠. 하루 16시간씩 일했는데, 잠시도 쉬지 못해요. 밥도 서서 먹어야 했어요. 아무 말 없으면 계속 다녀도 되는데, 안 나와도 아무도 신경 안 쓰는 분위기예요. 답답해서 미칠 것 같았죠. 냉장고 안에 들어가 소리를 지른 적도 있어요.”
트레일 과정을 성공적으로 해낸 그는 인턴으로 받아들여졌다. 그리고 다시 3개월 후, 다니엘의 정식 가족이 됐다.
“어느 날 일이 끝났는데 담당 셰프가 저를 부르더니 이 식당에서 가장 먹고 싶은 요리를 고르래요. 72시간 동안 브레이징(오븐에서 뭉근히 익힘)해야 하는 어린 돼지 족 요리를 골랐어요. 요리를 해주면서 ‘이제 당신은 우리의 가족이 됐다’고 했죠. 한입 베어 먹었는데, 와~ 세상에서 처음 느껴본 맛이었어요. 돼지에 어우러진 진한 트러플(송로버섯) 향이 환상적이었어요. 그 맛을 평생 잊지 못할 거예요.”
다니엘에서 그가 고안해낸 요리가 정식메뉴에 오른 적도 있다. 동양 손님이 많이 찾는 설날 연휴, 각종 견과류와 쌀, 잡곡을 갈아 넣고 랍스터 살과 함께 끓인 죽과 수프의 중간쯤 되는 식감의 음식을 제안했는데, 이 음식이 채택돼 코스요리의 맨 앞에 오른 것. 이후 그는 뉴욕의 타임워너센터에 입점한 ‘카페 그레이’에서 경험을 쌓아갔다. 오너 셰프를 꿈꾸던 그는 마침 비자가 만료되어 미국 최고 레스토랑에서의 경험을 뒤로하고 귀국했다. 다니엘에서 그는 요리사로서의 체력과 열정, 직급 고하를 막론하고 새로운 요리에 대해 열린 마음을 배웠다고 한다. 훌륭한 셰프에게 가장 중요한 조건은 뭘까. 그는 한참 생각하더니 입을 열었다.
“정직 같아요. 셰프 스스로 요리의 모든 과정에 떳떳하고 당당할 수 있어야 해요. ‘이건 아닌 것 같은데’ 하면서 그대로 하는 건 정직하지 않은 거죠. 재료를 보관할 때도 ‘이렇게 하면 안 되는데’ 하면서 그렇게 하고, 맛을 보고 ‘생각했던 맛이 아닌데’ 하면서도 손님에게 내는 건 훌륭한 셰프가 아니죠. 단계마다 스스로를 냉철하게 감시합니다. ‘나는 과연 정직한가’ 하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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