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onday, March 7, 2011

“떨떠름했던 사회 첫발… 와인에 취하니 달콤한 인생”

한번의 재수 경험을 거쳐 경희 호텔경영 전문대학(현 경희대학교 호텔관광대학)을 졸업한 나는 1996년 12월에 산학 실습생으로 스위스 그랜드 호텔(현 그랜드 힐튼 호텔)에 취직했다. 경기 침체로 인해 그냥 아르바이트생으로 1년 가까이를 보냈고, 어렵사리 잡은 6개월 계약직 자리도 IMF 분위기에 휩쓸려 무려 4번의 계약 갱신 끝에 3년이 지나서야 연봉제 신입 사원이 됐다.
▲ “학벌이 모든 것을 말하지 않는다”전문대 출신의 은대환씨는 현재 서울 강남구‘리츠칼튼 호텔’소믈리에로 활동하고 있다. 오종찬 객원기자 ojc1979@chosun.com
처음 호텔생활을 시작할 때는 와인이 포도주인지조차 잘 몰랐고, 떨떠름하기만 한 술이었을 뿐이었다. 하지만 딱히 다른 직업을 선택할 여지가 없던 당시 상황에서 호텔 식음료 부서에서 근무하기 위해서는 와인 공부를 어쩔 수 없이 해야만 했다. 그러나 한잔 한잔 시음횟수를 거듭할수록 내키지 않던 와인은 마실 만해졌다.

# 와인이 포도주인지도 몰랐다

가끔 소믈리에가 되려면 술을 잘 마셔야 되는지 질문을 받는다. 개인적인 주량은 소주 2~3병이지만, 주량과 소믈리에의 자질과는 별로 관계가 없다. 와인을 평가하기 위해서 시음하는 경우는 입안에서 몇 방울만을 넘기고 나머지는 뱉어낸다. 해마다 와인 품평회 심사위원으로 참여하고 있는 ‘코리아 와인 챌린지’ 대회에서는 하루에 50~70가지의 와인을 시음하고 평가해야 한다. 이런 품평회에서 와인을 전부 마시면서 평가하면 아무리 주량이 대단해도 나중에는 정신을 잃을지도 모른다.

당시만 해도 와인 같은 수입주류는 푸대접을 받았고 지금처럼 체계적인 와인 교육기관 또한 전무한 상태였다. 혼자서 와인 서적을 뒤지고 손님이 마시다 남긴 와인을 마셔보며 주먹구구식으로 공부할 수밖에 없었다. 그래도 직장 내에서는 상당한 지식을 자랑할 정도였는데, 주변 선배들의 격려도 많았지만 직급에 맞지 않는 행동이라는 질책도 들어야 했다.

사람들은 흔히 와인을 마시고 어떤 와인인지 맞추는 것에 대해 많은 질문을 던진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각 포도품종의 생산지역마다 고유의 기후와 토양이 있고, 또한 같은 지역 안에서도 생산자의 스타일이 다양하니 이런 것을 복합적으로 생각하는 것이 와인을 감별하는 방법이라 할 수 있겠다.

입안에서 산미가 많이 느껴지면 일단 어느 정도 서늘한 유럽 지역에서 만들어 졌다고 유추해 볼 수 있고, 산미가 적고 부드럽다고 느껴지면 미국이나 호주쪽으로 유추해 볼 수 있다.

좀더 세부적으로 들어가면 적절한 탄닌과 산미, 알코올이 느껴지면서 오크향도 온화하게 느껴지면 프랑스 지역으로 유추할 수 있다. 프랑스에서 카버넷 쇼비뇽이 많이 재배되는 지역은 보르도(Bordeaux)지역, 서남부 혹은 지중해가 인접한 남부 지역이 대표적이다.

지중해가 가까운 남부 지역에서 재배된 카버넷 쇼비뇽은 기후가 더워서 과일향이 풍부할 뿐만 아니라 그 향은 잼(Jam)같이 농축된 느낌이다. 그런 느낌이 감지되면 프랑스 남부 지역의 카버넷 쇼비뇽으로 만들어진 와인이라고 하는 것이다. 그렇지 않고 산미와 탄닌이 적절하고 약간 씁쓸한 맛도 느껴진다면 보르도 지역으로 짐작한다.

와인의 품질이 평이하다면 그냥 단순히 보르도 지역의 와인, 아니면 와인의 수준에 따라 메독지역 혹은 좀더 특색 있는 세부 마을까지 고려할 수 있다. 아주 부드럽고 우아한 향이 나면서 깊은 맛이 나는 좋은 품질의 와인이라면 마고(Margaux)지역을 유추해보고, 약간 투박하지만 입안에서 강한 맛이 유쾌하게 느껴지면 쌩테스테프(Saint-Estephe)지역이라고 유추해본다.

하지만 이 지역에서도 전형적인 그 지방 스타일을 추구하는 생산자가 있는 반면, 좀더 다른 자신만의 스타일을 추구하는 생산자가 있으니 더 이상 구체적으로 어느 곳이며 어느 생산자인지까지 맞추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마고 지역의 와인이면서 강한 느낌의 와인을 만드는 생산자가 있고, 쌩테스테프 지역의 와인이면서 섬세한 스타일을 추구하는 생산자가 있다. 영화 007이나 일부 드라마에서 주인공이 와인을 시음하고 몇 년산 어느 지방 어떤 생산자의 와인이라는 것을 하나도 틀리지 않고 100% 정확히 얘기하지만 현실성이 떨어지는 내용이다.

2000년 JW 메리어트 호텔에 입사는 내 자신이 본격적으로 와인 산업에 입문할 수 있는 결정적인 계기가 되었다. 이태리 레스토랑에 서비스 직원으로 입사 지원을 했는데 뜻하지 않게, 호텔 경력 4년 차에 불과한 내가 객실500실 규모의 특급호텔의 음료구매 담당으로 입사하게 됐다. 당시에는 최초로 20대 나이에 호텔 와인 리스트를 관리하는 기회를 얻은 것이다. 빨리 찾아온 업무의 중책이 전문적인 와인 공부에 대한 배경을 조성해 주었다. 무똥까데 와인스쿨, 중앙대학교 산업교육원 와인 과정 등에서 체계적인 와인 교육을 받았고, 프랑스, 이태리등 세계 유명 와인 산지를 찾아 다니며 와인 시음회가 있으면 만사 제쳐두고 시음회에 참석했다.
# 내 주량은 소주 2~3병
이런 기회도 3년 후에 갑작스런 변화가 있었는데, 하루 아침에 일반자제 구매 담당으로 보직이 변경되는 통보를 받고 와인과 관련된 업무를 다음날부터 바로 손을 놓는 위기를 맞았다. 당시에는 호텔에 사직서를 제출하는 것까지 고려할 정도로 힘든 시기였지만(정신적인 스트레스로 한달만에 7Kg의 체중이 빠졌다) 접시, 린넨, 인쇄물 등의 구매 업무를 보면서도 와인에 대한 관심의 끈을 놓지 않았다.

그러던 중에 2003년, 소펙사 주최의 제3회 소믈리에 경진대회는 와인 지식에 대한 자신감을 증가시켜주는 계기가 되었다. 전직 서비스직 종사자도 시험에 응시할 수 있던 당시 대회에서 소믈리에는 아니지만 내 자신의 실력을 평가해보고 싶었다. 그 대회에서 난 70여명의 현직 소믈리에들과 겨루어 상위 5명이 진출하는 결선에까지 진출할 수 있었다. 결과는 비록 공동 4위에 머물렀지만 이후 와인에 대한 지식 향상을 위해 보다 풍부한 기회를 갖게 되었고, 무엇보다 자신감을 가지게 된 것 같다. 그러면서 와인 산지 방문도 짜여진 프로그램에 따라 다니기만 했던 것을 넘어 이때부터 내 스스로가 계획을 세워 스스로 여행을 떠나기 시작했다.

# 마시는 일이 공부… 즐겁다
제4회 소믈리에 대회에서는 처음 신설된 ‘와인 어드바이저’부분에 1위를 했고, 최초의 프랑스 농림부 공인의 ‘와인 어드바이저’ 자격증을 얻을 수 있었다. 결국 2005년 10월경에 현 직장인 리츠칼튼 호텔측으로부터 입사를 제안받았다. 와인 업계로 다시 돌아올 수 있었던 것이다. 직함은 레스토랑 소믈리에라는 타이틀이었다. 2006년 말에는 전세계 와인을 대상으로 처음 시행하는 제1회 한국 국제 소믈리에 대회에서 우승도 했다.

전에는 사회 유명인사들만 초대해 한 병에 200만원이 넘는 샤또 페트뤼스(Chateau Petrus)를 서비스 하는 저녁 만찬이 있다는 정보를 들으면 무조건 그곳을 찾아가 한 모금 시음을 부탁하기도 했었다. 하지만 요즘에는 상황이 달라졌다. 얼마 전 새로 부임한 프랑스 출신의 총주방장이 샤또 디켐(Chateau d’Yquem)-프랑스의 최고가 디저트 와인-을 마셔 본적이 있냐고 물어보길래 가끔씩 마신다고 대답하니 자신은 일생에 2번밖에 못 마셔본 와인이라며 깜짝 놀라기도 했었다. 그만큼 이제는 선택된 소수만이 마시는 와인까지도 접할 기회가 많아졌다. 한번은 한 손님이 크로 파랑뚜(CROS-PARANTOUX)라는 ‘신의 물방울’이라는 만화책으로 유명해진 고가의 아주 구하기 힘든 와인을 드시다가 나에게도 시음기회를 주고 싶어서 마개를 막아서 직접 들고 오신 경우도 있었다.

소믈리에는 레스토랑에서 와인을 다루는 직업이지만 기본적으로 서비스 직종이다. 그렇기에 소믈리에 대회의 무대에서 빛을 발하는 것보다 현재 근무하는 레스토랑에서 손님들에게 인정 받는 일이 가장 중요하다.

요즘 소믈리에를 직업으로 희망하는 사람들이 많이 늘고 있는 추세다. 소믈리에라는 직업을 가진 필자의 입장에서 조언을 한다면, 다수의 직업이 그러하듯이 정말 매력적인 직업임에는 분명하다. 하지만 동시에 어려움도 많은 직업이다. 육체적으로나 정신적으로 과도한 업무가 있기에 적성에 맞지 않으면 버텨내기 힘든 직업이다. 급여 또한 자기 계발을 꾸준히 하는데 많이 부족한 것이 현실이다. 하지만 먹고 마시는 일이 직업에 대한 공부이니 얼마나 즐거운 자기 계발인가.


‘소믈리에’는…

작년 ‘제1회 한국 국제 소믈리에 경진대회’에서 우승한 은대환(34)씨는 와인을 관리하고 추천하는 일을 직업으로 가진 전문 소믈리에(Sommelier)다. 현재 리츠 칼튼 호텔 소믈리에로 활동 중이다. 소믈리에는 양질의 와인을 최적의 상태에서 손님의 기호에 맞게 서비스하기 때문에 흔히 와인 감별가로도 통한다. 중세 유럽에서 식품보관을 담당하는 솜(Somme)이라는 직책에서 유래하였으며, 19세기 프랑스 파리에서 와인을 전문으로 하는 사람이 생겨나면서 지금과 같은 형태로 발전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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